은혜 소식

무신론자였던 세종대학교 김승옥 교수의 간증

Author
마이클 장
Date
2015-02-07 20:03
Views
2387
김 승 옥
소설가/세종대 교수

간증을 하는 이유
무신론자였던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직접적인 은혜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오시며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이 글을 쓴다.
너무나 뜻밖으로 크나 큰 하나님의 은혜을 받은 초기의 몇 가지 이야기를 이 글에 쓰고자 한다.
1981년 4월 26일 새벽, 하나님께서 내 영안(靈眼)을 여시고 그 분의 하얀 손으로 내 명치를 어루만져 주시며, "누구냐?"고 묻는 내 질문에 분명히 한국말로 "하나님이다."고 대답하시는 체험을 했다.
그 해 12월 어느 날 이른 아침, 아침기도 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내 영혼이 내 육체를 떠나 새카만 상태 즉 하늘(영혼세계) 속을 매우 빠르게 날아가는 경험을 하였다.
1982년 11월 하순 어느 날 오후, 하나님의 음성으로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인도에 가서 전도하라!"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1983년 10월 어느 날 오전, 워커힐 쉐라톤 호텔 일실에서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의 전신이 내 옆에 발현하셨다.
이런 여러 가지 체험을 하게 되기까지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된 이후 깨닫고 변화된 내 사고방식에 대하여 얘기하는 것이 내 간증이 되겠다.

내 체험이 다소 특이하기 때문에 듣는 분들 중에서 특히 믿음 없는 분들은 '소설가니까 아마 소설을 쓰고 있나 봐!' 그런 말을 할 정도여서 간증하기가 항상 어렵게 느껴진다.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으면서 간증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다메섹 가던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 만난 체험을 얘기하니까 베스도 총독이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하던 그런 성경말씀이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하나님 만난 체험을 나 혼자 간직하고 말았을 것이다. '바울이 미친놈 취급을 받으면서 간증하고 다녔다면 나도 미친놈 소리 좀 듣지 뭘.' 용기를 짜내어 여기 저기에서 간증을 하곤 했다. 그러나 심지어 어느 기독교 방송국에서 간증하고 나오니까 담당목사가 슬그머니 "하나님은 인간이 볼 수 없다고 되어 있는데..." 몹시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일 때는 슬그머니 화가 나기도 했다. 요한일서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하는 말씀 때문인지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존재라고 설교하는 목사님들을 이따금 보곤 한다. 하나님을 오직 마음으로만 믿는다는 뜻으로'믿음'의 뜻을 한정시키는 것 같다. 나는 방송국 사회자에게 슬그머니 "목사님께 마태복음 5장 8절을 보시라고 말씀해 주시겠어요?" 말하고나자마자 금방 후회가 되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하는 예수님의 유명한 산상수훈 중 한 말씀인데 마치 내가 마음이 청결한 자여서 하나님께서 당신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자랑하는 꼴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도 있다는 성경말씀이 있지 않은가!' 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환기 시켜드리겠다는 뜻인데, 이거 참 주제넘게 건방진 소리를 하고 말았다고 몹시 후회되는 것이었다. 오히려 큰 죄인이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신 것인데 말이다. 바울도 예수 믿는 사람들 잡아죽이려 가던 크나 큰 죄인이기에 그 미친놈 같은 열성적인 마음을 옳은 방향으로 돌려 사용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신 것이라고 봐야 하듯이 나 역시 스스로는 구원 받기 어려운 크나 큰 죄인이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신 것일 텐데 말이다.

하기야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하나님 만났다는 얘기가 이상할 수밖에 없다. 내가 무신론자이던 시절에 하나님 도움으로 병이 나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종교 팔아서 돈버는 사기꾼의 앞잡이'라고 상대를 내심 경멸하며 '종교란 윤리적인 생활을 하자는 사회적 운동이죠.' 점잖게 떠밀어 버리던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인간의 일은 인간끼리 할 테니 하나님은 가만히 좀 계십시오' 하던 프랑스 어느 시인의 시 한 줄을 좋아했던 나였다. 가령 함께 술집 다니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나 하나님 만났어."하고 말한다면 나 역시도 '미친놈, 술 좋아하더니 결국 돌았군.'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 간증을 듣는 사람들의 온갖 착잡한 표정에 대하여 나는 그저 '저 사람 표정이야 당연하지 뭘! 그저 제발 날 미친놈 취급만 하지 말아다오.' 그런 생각으로 버틸 뿐이다.
그러나 각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체험한 믿음 깊은 분들은 간증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또하나 신입생이 늘었군!' 반가운 마음이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야말로 하늘세계의 영원한 법칙이다. 술 좋아하는 사람끼리 서로 반가워 끌어안고 술집으로 가듯이 믿음을 가진 이들끼리는 서로 서로의 간증이 하나님께 향한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결국 끼리끼리 모여서 살게 하는 것이 내세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의 운명이기에 예수님께서 첫째 명령으로 '네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고 깨닫게 된다.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닮지 않으면, 세상을 개화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나서도 하나님의 밝고 창조적인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운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시작과 종말은 이 '유유상종'이라는 우주법칙 때문인 것이다. '예수 믿으라'고 권하는 이유는 마음의 고통 없이 영원히 사는 팔자가 되자고 권하는 것이다. 성경공부하자고 권하는 이유는 하나님 사고방식을 나도 가지자고 권하는 것이다. 좋은 일이니 권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한번쯤 '인간에게는 육체와 분리되는 영혼이 있고 인간을 사랑하시며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더라'고 내가 40세가 되어서야 알게된 것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성장과정
하나님을 알게 되어 해결된 가장 큰 내 인생문제는 죽음의 문제이다.
살아오면서 존재에 대한 수많은 의문 때문에 마음이 항상 답답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암담했던 문제는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이었다. 다음과 같은 사정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죽음처럼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없었다.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나는 1945년 광복돠던 해에 귀국하여 어머니의 고향인 전남 순천시에서 성장하였다. 1948년, 내가 여덟 살, 국민학교 1학년 때 여순반란사건이 터졌다.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14연대가 적화되어 토착적인 남로당과 함께 여수 순천 등지를 점령하고 적화활동을 시작하자 진압군이 포위하고 토벌했던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우익이다 좌익이다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총살되었다. 삼십대 초반이던 내 아버지도 그 사건 속에서 돌아가셨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던 시대이기 때문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공포심 밖에는 없었지만 그러나 인간이 죽을 수 있는 존재란 사실이 절실한 나의 인생문제가 되어 버렸다. 왜 인간은 태어날까? 일단 태어났으면 영원히 살아야할 것이 아닌가? 죽어 없어질 바엔 아예 태어나지 말아야 하는 게 옳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한편 좌익이다 우익이다 나누어서 서로 죽이는 이유가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어른들의 설명이다. 생각이 다르면 서로 죽여야 하는 게 인간이란 말인가? 좋은 생각이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생각일 텐데 사람을 죽여야하는 생각이란 결국 나쁜 생각이 아닌가? 도대체 어떤 생각이 가장 좋은 생각인가?
그 3년 후, 내가 열 한 살이던 국민학교 4학년 때, 두 남동생 아래로 하나 밖에 없던 세 살짜리 여동생이 심한 열병으로 갑자기 죽었다. 내가 항상 업고 다닐 만큼 사랑했던 여동생이 죽고나자 죽음이라는 인간의 조건에 대하여 슬픔이 지나쳐 미칠듯한 분노조차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제 말을 몇 마디 배워 "오빠, 밥 먹자."하던 아이, 추운 겨울날 땅에 파묻힌 아이를 생각하면 어디서건 나는 눈물부터 쏟아졌다. 왜 사랑하는 한 가족이 영원히 함께 살지 못할까? 그 보다 더 허무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언젠가 죽고 만다면 무슨 일이건 성취한다는 게 무슨 뜻이 있다는 말인가?
여동생이 죽은 이후 나는 장로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는 교회의 가르침에 뭔가 희망을 걸고 참으로 열심히 예배에 참석했다. 여동생과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세상에 홀로 남아 어린 아들 셋 키우시느라고 고생 많으신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했다. 방학중엔 새벽기도도 다녔고, 평소엔 저녁식사 후 동생들 데리고 찬송가 여러 곡을 부르고서 공부를 하곤 했다. 믿음생활 덕분에 비교적 성실한 소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학생회장으로 당선되기도 하고 학교 대표 배구선수도 하고 학교 교지도 편집하고, 후회 없는 소년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목사님의 설교를 열심히 들어도 인간이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사실이 어떤 실감을 가지고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죽으면 땅에 파묻는데 도대체 천국간다는 게 무슨 뜻인가? 영혼이 간다는데 도대체 영혼이란 게 뭔가? 마리아라는 숫처녀가 남자교섭 없이 예수를 낳았다는데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얘기인가? 남자교섭 없이 애를 낳을 수 있다고 해도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남자 여자 사이에서 애 낳는 일이 그렇게 죄스런 일인가? 예수님이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데 이런 동화 같은 얘기를 과연 믿어도 좋은가? 또 믿는다고 해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예수님은 '누가 네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밀어 더 맞으라'고 가르치는데, 글쎄, 마주 싸우지는 않을 수 있지만 왼쪽 뺨까지 내밀어야 한다는 건 나에게는 좀 무리한 당부이다. 이런 식의 의문이 소년시절 항상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교회출석을 그만두고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 또는 무신론자로 변하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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